제목 : <기사> 봄의 끝자락 오페라 산책 '마농레스코' | 2011년 01월 31일 18시 19분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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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자락 오페라 산책

마농 레스코





“봄이 실종된 4월에 국내 오페라계의 쌍벽을 이루는 국립오페라단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서울시 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가 같은 주간에 무대에 올라 선의의 경쟁을 하였다. 파격적이고 모던함을 지향하는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와는 달리 서울시 오페라단의 무대는 지극히 고전적이라는 점이 주목할 관점이다. 4월 22일~25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진 <마농 레스코>의 웅장하고 클래식한 무대는 마치 인상파화가의 유화를 무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세련되고 멋스러웠다.”

프랑스 대중 소설이 원작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프레보 Prevost의 대중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뤼 이야기 L'history du chevalier des Grieux et Manon Lescaut」가 원작. 18세기의 사회적인 풍조를 배경으로 심리적인 분석의 묘미와 구성과 스타일의 단순성이 매력인 작품으로, 이미 프랑스의 작곡가 마스네Massenet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 <마농>을 작곡하여 인기를 누렸다. 이 프랑스 작품을 베르디의 오마주, 푸치니가 색다른 이탈리아적인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의 매혹적인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1893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레조Regio극장에서 초연은 당시 젊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한국 초연은 1968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있었다.

‘마농’ 역에 김향란, 김은주, 박재연이 ‘데 그뤼’ 역에는 한윤석, 최성수, 엄성화가 마농의 친오빠 ‘레스코’ 역에는 김범진, 한경석, 유승공이 각각 출연하였다. 마농의 김향란은 욕망의 젊은 여인 마농을 노래하기는 조금은 버거워보였다. 고음의 처리가 불안하고 비브라토도 심하였다. 하지만 중저음에서의 긴장감은 좋았다. 거기에 비해 김은주는 파위풀한 면에서는 약해보였지만 세련되고 정갈한 목소리로 마농을 잘 표현하였다. 데 그뤼의 한윤석은 정제된 화려함과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하였는데 3막의 아리아 “아니, 난 미쳤어! No! pazzo son!"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여운을 전해주었다. 최성수는 서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면을 고루 갖추었지만 힘이 부족해 보인다. 레스코의 김범진은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애썼고, 한경석은 안정적인 목소리로 음장감이 뛰어났다.

합창단의 연기와 노래 두 가지 모두는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물론 절대적 비교는 불가하지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합창단원들이 수동적이었다면 <마농레스코>의 합창단원들은 보다 능동적이었다. 즉 주연들과의 호흡이 아주 자연스럽고 농밀한 조화를 이루면서 무대를 더욱 활기차게 표출하였다.

지고지순한 데 그뤼의 사랑

마농이라는 캐릭터는 ‘하마르티아 μαρτα판단의 잘못 혹은 잘못된 성격으로 초래된 비극적인 결함’에 기인한 인물이다. 2막에서 제론테의 사주를 받고 출동한 경관들을 피해 도망칠 때 금은보화에 연연하지 않고 즉시 도망쳤다면 3막과 4막에서와 같은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텐데 재물에 눈이 멀어 비극을 스스로 자초하는 인물이다.

2막에서 마농이 머무르는 화려한 제론테의 저택은 마농의 상상계를 대변한다.(자크 라캉 Jacques Lacan의 관점으로 본다면). 데 그뤼와의 사랑은 달콤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화려한 부귀영화는 젊은 연인 데 그뤼가 충분하게 제공하지 못한다. 노쇠했지만 돈 많은 제론테만이 마농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귀족 사회의 화려함과 향락이라는 달콤함을 쫓아 제론테를 따른 마농에겐 제론테의 재력과 저택이 그녀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상상계로의 진입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화려한 생활에 식상함을 느낀다.

이러한 찰나에 연인 데 그뤼와 재회하고 다시금 불꽃같은 사랑을 불태우는데(2막 후반부)이는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던 상상계(제론테의 저택 안에서의 화려한 부귀영화)에서 마농이 뒤늦게 철이 들음으로 인해 서서히 상징계로 진입(돈은 없는 연인 데 그뤼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랑의 도피)한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다.

마농은 상징계로 진입하고서야(3막,4막) 비로소 철이 들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유배되는 마농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데 그뤼의 진실한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그의 헌신적인 사랑에 동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농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 가능하게 만드는 극중 캐릭터는 연인 데 그뤼이다. 지고지순한 데 그뤼의 사랑은 더욱 무대위에서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감동적인 무대, 촘촘한 연출

장수동 연출은 큰 무대에서 더욱 돋보였는데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동선과 함께 드라마틱한 무대를 만들었다. 특히 3막에서 마농과 함께하려는 애절하고 안타까운, 데 그뤼의 심정을 잘 표현하였다. 뒤이어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는 조명을 컷 아웃함으로 여운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리얼리티를 듬뿐 살린, 스케일이 큰 무대는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이학순의 한폭의 대형 그림같은 감상적이며 멋스럽게 표현한 무대는 기억 속에 자리매김 하였다. 더해서 소품, 의상, 가발, 장신구등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디테일을 강조했다.

조명은 자연스럽고 세련되었다. 1막 파리 근교, 아미앵 광장의 따뜻한 기운의 온화한 조명은 좋았는데, 왼쪽의 여관 앞에 비해 오른쪽의 나무그늘이 지나치게 어두위 각기 동떨어진 것처럼 보여 같은 장면인데도 이질감이 느껴진다. 점차 어두워진 후반의 저녁부분은 멋스럽게 그려냈다. 2막의 제론테의 저택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그림자, 3막의 르아브르항구의 운치있는 무대와 더불어 마농과 데 그뤼의 운명같은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다. 그런데 4막의 시작에서 무대중앙부만 밝게 하고, 지평선을 나타내는 뒷부분이 낮이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던 점은 지나쳤다. 시간이 경과해서 불그스레한 노을과 푸른 저녁으로 옮아가는 과정은 인상적이었지만.

2막후 구슬픈 선율의 첼로와 바이올린의 솔로로 시작되는,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는 처연한 간주곡은 마농의 욕망의 끝을 알리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최승한의 지휘는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이 있는 매끄러운 음악을 연주해 무대를 든든하게 하였다.

벚꽃 잎이 바람에 눈처럼 떨어지고, 물기를 머금은 하얀 목련이 제 몫을 다하고 스러진다. 또 다른 생명을 깨우는 아침을 기다리며 생명이 춤을 추는 봄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봄이 봄같지 않은 파란만장하고 잔인한 4월을 보내며.

문화예술 크리틱 저널-뷰즈 2010년 5·6월호

글 김현우 평론가 (2u4uu@naver.com)

사진 서울시 오페라단 제공

  관련사이트 : http://
  <기사>푸치니의 지시대로..그래, 그 표정! '마농레스코'
  <기사> '지하철역 무대'서 바로크 오페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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