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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오페라의 세기,
아시아의 신(新) 실크로드 열려
“선배 성악인들의 오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한국을 오페라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임은 분명하지만, 한국 오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젠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는 몸짓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리골레토⌟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는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총 9회의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리골레토⌟.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베르디의 오페라 수작인 ⌜리골레토⌟가 서울오페라앙상블에 의해 재탄생되어 대중에게 선보인다. 연출가 장수동이 대표로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은 1994년 5월, ‘오페라의 전문화’, ‘오페라의 대중화’를 목표로 창단되어 지난 12년간 꾸준히 신작 오페라를 공연해 온 오페라단이다. 변함없는 창의적 신선함으로 대중에게 다가서 온 그들이 이번에는 오페라 ⌜리골레토⌟의 파격적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시아판 버전으로 변신하게 될 ⌜리골레토⌟는 최근 일고 있는 한류와 접목하여 한국오페라를 아시아 문화 허브의 중심축으로 발전시켜 대중문화 일변도의 한류 열풍을 뛰어 넘어 클래식 음악을 통한 30억 아시아인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클래식 음악과 접목시켜 현지화된 오페라를 개발하여 한국 오페라를 아시아권 문화 허브의 중심축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고급문화로서의 한국 상품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제품 판매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현지화된 오페라 제작으로 아시아권 오페라와의 교류를 추진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계의 가장 큰 고민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서양 문화 일변도의 예술 양산으로 자기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아시아판 오페라를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극장 문화의 붐이 조성되고 있는 아시아권 주요 극장과의 교류를 추진, 서양 오페라의 변방에서 벗어나 오페라를 동시대 공연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연출가 장수동. 한국 오페라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신흥 경제권의 아시아 국가간의 문화 교류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함은 물론, 기존의 오페라 제작의 관행과 차별화된 신선한 제작 시스템으로 새로운 공연 콘텐츠 구축이라는 거국적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예술 감독 장수동을 만나보았다.
세계무대로 비상하기 위한 발상의 대전환
▶ 이번에 준비하고 계신 ⌜리골레토⌟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품의 배경이나 인물설정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작품을 완전히 비틀어서 재탄생시키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 2006년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가 초연(1851년)된 지 155년이 되는 해이고, 한국에 상륙(1958)한 지도 48년이 되는 해입니다. 베네치아 페니체극장 초연이래 전세계 오페라극장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다음으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죠. 그 중 4차례의 공연은 제가 연출을 맡기도 했었구요. 이미 몇 해 전부터 일본과 중국 등의 오페라 관계자들과 더불어 이러한 프로젝트의 구상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선적으로 국내산 토종들이 뭉쳐서 시험무대를 만들고자 기획하게 되었지요. 특별히 ⌜리골레토⌟로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이유는, 음악적 아름다움과 극적 구조가 일치하는 드라마틱 오페라 ⌜리골레토⌟가 어느 오페라보다 관객과의 소통이 강렬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오페라의 ‘압축 팽창’ 성장과 맞물려 베르디 오페라 전문가수가 급속하게 늘어나기까지 했는데요. 저는 이러한 여건을 토대로 새로운 오페라의 세기, 특별히 아시아의 신 실크로드를 열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의 ⌜리골레토⌟ 공연을 살펴보면, 초기의 공연은 잘 알길이 없으나 제가 오페라 연출에 입문한 80년대 초 이후의 무대는 천편일률적으로 성악 위주의 전통적인 오페라 공연 방식을 마치 오페라의 교본처럼 여기며 무대화하여 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오페라 본고장의 진수를 선보인다며 외국 지휘자, 연출자, 무대세트, 의상을 공수해 와 잘 포장된 ‘오페라의 복제’에 열을 올린 대표적 작품의 하나가 바로 ⌜리골레토⌟였지요. 그것은 음악 그 자체의 탐미적 관점에서만 머물고 오페라가 갖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에는 지나칠 정도로 등한시한 그간의 퇴행적 오페라 제작의 관행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선배 성악인들의 오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한국을 오페라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임은 분명하지만 한국 오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젠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는 몸짓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리골레토⌟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이번 오페라의 배경 및 상황 설정과 원작의 음악이 어떠한 형태로 어우러지게 될지가 궁금하네요. 특히나 무대와 조명, 의상 등이 어떠한 상징들로서 표현되고 사용될지도요.
- 무대 배경은 중세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가 아닌 20세기 끝자락의 가상의 항구도시 K로 변신합니다. 제 1막의 중세 만토바 궁정과 거리는 동서문화가 혼재된 첨단의 항구도시 K의 다국적 기업의 멤버십 파티장과 대조를 이루는 남방식 낡은 난민촌으로, 제2막의 공작의 방은 다국적 기업-사실은 전쟁무기 밀거래 현장-의 밀실로, 제3막의 스파라푸칠레의 술집은 도시화에 밀려나 슬럼화된 항구의 폐선착장으로 무대를 바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다국적 기업을 상징하는 만토바 공작에 의해 무너져 버린 아시아적 가치-전쟁 난민출신의 리골레토와 그의 딸 질다-가 갖는 동시대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아시아인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사회의 폭력성, 파괴적 본능이 가져온 비극성을 보여주는 현대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리골레토⌟의 작품 배경을 원작에서의 16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강변도시 만토바가 아닌, 다국적 거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는 20세기 말, 아시아의 한 가상의 항구도시 K로 설정한 것은 거대자본 속에 함몰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를 표현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리골레토와 그의 딸 질다의 비극적 삶을 자본을 앞세운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뭇 아시아인의 모습으로 투영할 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리고 의상도 현대적이지만 동양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중국풍의 의상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했는데요, 질다 역의 소프라노 응시자의 자격으로 ‘의상에 몸이 맞는 분에 한해서’라는 제한이 붙었습니다. 원작과는 달리 리골레토는 요리사로, 두카는 다국적 기업의 젊은 CEO로 나오게 됩니다. 기본적인 배우들의 성격이나 아리아 등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무대와 배경은 완전히 현대로 바뀌는 것이죠. 오페라는 ‘죽은 예술’이 아닌 동시대인을 위한, 동시대인의 음악이어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보이게 될 현대적 ⌜리골레토⌟의 연출은 물질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불가해한 파괴적 폭력 본능’을 그대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페라를 통해 거대 조직 속에서의 현대인의 비극적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연출적 발상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시아판 ⌜리골레토⌟에서 난민 출신 보트피플인 리골레토를 통해 현대인의 폐쇠적 인간관계와 파괴적 본능의 노출이라는 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변방’에서 ‘중심’을 향하는 오페라 지향
▶ 아시아판 오페라를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극장 문화의 붐이 조성되고 있는 아시아권 주요 극장과의 교류를 추진하여 서양오페라의 변방에서 벗어나 오페라를 동시대 공연예술로 승화시키려는 한국 오페라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신흥 경제권인 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류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오페라 제작의 관행과 차별화된 신선한 제작 시스템으로 새로운 공연 콘텐츠를 구축한다고 밝히셨는데요,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연출가로서 어떠한 염원이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 아시아판 ⌜리골레토⌟에서 표현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너져 내린 ‘아시아적 가치’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화의 구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20세기 끝자락에서 아시아 경제는 외한 위기를 겪으면서 IMF 프로그램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발목이 잡힌 한국경제도 구조 조정의 지난한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요. 건전한 아시아식의 삶의 방식, 즉 ‘아시아적 가치’를 바탕으로 불가피했던 구조조정을 지혜롭게 하였더라면 오늘의 상황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이코노믹 글로벌리즘을 앞세운 저들의 주장 앞에서 우리들이 지켜온 아시아적 가치는 모두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산이었던가를 고민하고 있는, 세계질서의 무한 경쟁적 경제논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아시아인들의 시각이 이번 작품의 연출 방향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 아시아판 ⌜리골레토⌟, 즉 한국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다시 해외로 나갈 발판이 마련되는 셈인데요, 그래서 여느 때보다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연출에 임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앞으로 공연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대중의 반응에 대한 예상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이러한 논리 비약의 발상에 모두가 동의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혼란과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오페라가, 아시아의 오페라가 재래적 방식의 ‘오페라 복제’에 길들여진 변방의 오페라로 자족하려 한다면 오페라 ⌜리골레토⌟도 시대정신과 무관하게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업이 오페라의 순수성을 왜곡한다는 오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오페라도 계속적으로 ‘진화’ 되어야 하는 공연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지난 60년간 많은 베르디 공연을 양산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적 베르디 오페라’를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 오페라는 결코 ‘오페라의 변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생각을 바꾸면 베르디가 다르게 들리고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위대한 오페라의 스승 베르디가 꼭 155년 전, 왕을 풍자하는 내용이면서 작품이 칼질 당하는 검열을 당하면서도 궁정광대 리골레토를 앞세워 지혜롭게 초연한 오페라 ⌜리골레토⌟를 통해 오늘 날 우리는 소중한 교시(敎示)를 얻을 수 있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1차적으로 서울에서의 5월 공연에 이어 11월 상해 공연, 2007년 2월의 홍콩 국제아트페스티벌 참가로 이어져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 ⌜리골레토⌟를 선보임으로써 대중문화로 각인된 한류를 고급문화로서의 오페라로 한류의 차원을 높여 나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출처] 2006.05 음악춘추 |